브릭스의 다자간 결제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에서는 '적극적 설계자'로 변모
印의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 美의 관세 위협 수위 높이고 협상 난항에 빠뜨려
[방콕=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 인도와 미국 간 무역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이유가 철강이나 농산품 때문이 아니라 인도의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인도 뭄바이에 본사를 둔 투자 자문 기업 발룸 캐피털 어드바이저의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이자 인도 금융계에서 '달랄 스트리트의 마법사'로 불리는 마니쉬 반다리는 이코노믹 타임스(ET)에 기고한 글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협상 조건 확정을 위한 전화를 걸지 않아 양국 간 무역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며 "평범한 관찰자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관료적인 망설임처럼 보였겠지만 글로벌 자본 흐름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수화기 너머의 '침묵'은 세계 경제 질서가 격변하고 있음을 알리는 '천둥소리'와 같다"고 적었다.
미국 측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모디 총리라는 개인적이고 지엽적 문제로 돌렸지만, 본질적으로는 달러 기반 질서에서 탈피하려는 인도의 전략적 결단이 양국 관계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반다리는 규제 당국에 제출된 자료, 중앙은행 데이터, 지정학적 신호들을 분석한 결과, 양측의 무역 교착 상태는 아몬드(농산품)나 철강 때문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고 썼다.
양국 간 무역 갈등의 이면에는 인도의 '페트로-루피(Petro-Rupee)' 전략이 있다며, 인도는 자국 화폐인 루피로 석유 대금을 결제함으로써 금융 주권을 확보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는 달러 기반의 글로벌 금융 질서를 수호하려는 미국과 정면 충돌하는 길을 택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인도는 브릭스(BRICS) 회원국들에 회원국 간 디지털 화폐 연계를 제안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달 20일 소식통을 인용, 인도 중앙은행(RBI)이 자국 정부가 올해 주최할 브릭스 정상회의 의제로 '브릭스 회원국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연계'를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RBI의 이번 제안은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나온 선언에 기반한 것이다.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식으로 달러화 사용 비중을 낮추고자 하는 브릭스는 당시 선언에 회원국 간 거래를 더 효율화할 수 있도록 회원국 결제 시스템의 상호 이용 방안을 추진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탈달러'는 미국이 용납할 수 없는 '금기(레드라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을 용납할 수 없고, 여기에 도전하는 나라에는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24년 12월 브릭스를 향해 "새로운 자체 통화든, 기존 통화든 브릭스가 달러 패권에 도전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이라는 수출시장과 작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다리는 "1974년 닉슨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정을 맺은 이후 전 세계 석유 거래는 사실상 미국 달러로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전 세계 국가들이 막대한 달러 보유고를 유지하도록 하고, 이 달러들은 다시 미국 국채에 재투자되어 미국의 재정 적자를 충당하고 달러의 글로벌 패권을 공고히 해 왔다"며 "역사는 이러한 체제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가혹했다. 2000년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의 석유 판매 대금을 유로화로 전환했을 때나,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금 기반의 아프리카 단일 통화를 제안했을 때, 그 지정학적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고 짚었다.
반다리는 이어 "수십 년 동안 어떤 동맹국도 이 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지만, 변화하는 2026년의 정세 속에서 인도는 그 선을 넘었다"고 분석했다.
반다리에 따르면, 인도와 미국 간 경제 관계 악화는 2025년 중반부터 시작됐다. 모두가 외교적 화해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RBI는 러시아와의 루피 무역에 걸림돌 제거에 힘쓰면서 지난해 8월 '특별 루피 보스트로 계좌(SRVA)'를 보유한 외국인들이 잉여 잔액을 인도 국채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중요한 동맹인 인도와 아랍에미리트(UAE)가 2023년 100만 배럴에 달하는 대규모 원유 거래에 자국 통화(루피)를 사용함에 따라 '탈페트로 달러' 시스템의 실현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미국의 우려가 증폭됐던 가운데, 지난해 8월 전해진 인도와 러시아 간 소식이 미국의 대인도 관세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반다리는 "인도는 러시아가 석유 수익(루피)을 인도 국채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했다. 러시아의 석유 수익은 더 이상 미국 국채를 쫓지 않고 인도의 인프라 투자에 사용됐다"며 "미국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몇 주 만에 미국은 인도산 일부 수입품에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양국 파트너십이 위태로워졌음을 알리는 징벌적 조치"라고 분석했다.
반다리는 "페트로 루피가 지핀 불씨를 더욱 키운 것은 브릭스의 다자간 결제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에서 인도가 수동적인 참여를 넘어 적극적인 설계 단계로 나아간 것"이라며 "RBI의 제안은 단순한 이론적 구상이 아니다. RBI가 전자루피의 국경 간 거래 기능을 적극적으로 테스트하는 등 인도는 서방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 '디지털 스위프트(SWIFT)'를 사실상 구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에게 있어 이는 (금기를 넘는) 최후의 도발"이라며 "(인도의 행보는) 단순히 규제를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을 '대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hongwoori8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