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종속·데이터 소외 우려도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한 '자율주행 파운드리' 전략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불확실성을 피해 안정적인 하드웨어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이 과정에서 플랫폼 종속과 수익성 제약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구글 웨이모와 2028년까지 약 5만대 규모의 아이오닉 5를 공급하는 3.6조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구체화하며, '자율주행 파운드리'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지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공언한 위탁 생산 모델이 단순한 구상을 넘어 실질적인 매출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전용 설계를 거친 아이오닉 5를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인 '웨이모 드라이버(Waymo Driver)'용 차량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의 승자가 아직 가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 기술 노선에 올인하기보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표준 하드웨어 공급처가 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파운드리 모델은 단기적으로는 매출 가시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자율주행 전용 차량은 일반 소비자용 차량과 달리 대량·장기 공급 계약이 전제되며, 로보택시 시장 확대와 맞물릴 경우 안정적인 B2B 수익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동화 플랫폼 경쟁력과 대량 생산 능력,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동시에 갖춘 현대차의 제조 역량은 글로벌 자율주행 생태계에서 희소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수익성 측면의 한계는 분명하다. 플랫폼 기업들은 차량을 브랜드 자산이 아닌 운영 비용의 일부로 인식한다.
물량이 확대될수록 단가 인하 압박이 구조화될 가능성이 크고, 완성차 업체가 자율주행 알고리즘이나 서비스 주도권을 갖지 못한 채 차체와 플랫폼만 납품하는 구조에서는 마진 개선에 제약이 따른다. 이는 과거 PC 산업에서 하드웨어가 범용화되며 가격 경쟁으로 치달았던 경로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기술 주도권 측면의 리스크도 존재한다. 현대차는 자율주행 센서와 고성능 컴퓨팅 장치, 이중화된 전원·제어 시스템 등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차량을 공급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자율주행 경쟁의 본질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에 있다"며 "플랫폼 기업이 주도권을 쥐는 구조에서는 완성차 업체가 파운드리 역할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자율주행 시스템을 포함해 파는 만큼 기술적 가치가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 차량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하는 알고리즘과 핵심 센서 사양에 대한 결정권은 플랫폼 기업이 쥐고 있다.
현대차의 역할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집'을 지어주는 데 집중돼 있고, 그 집 안에서 어떤 지능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외부에 의해 규정되는 구조다.
이 구조에서는 데이터 주도권 문제도 뒤따른다. 자율주행의 핵심 경쟁력은 실제 도로 환경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통해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데 있지만, 해당 데이터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에 귀속된다.
현대차는 차량 상태나 배터리, 부품 이상 여부 등 차량 데이터는 확보할 수 있지만, 사고를 피하고 판단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핵심 인지·판단 데이터 루프에서는 주변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 교수는 "자율주행 차량 공급이 확대될수록 데이터 소유권은 프로그램 운영 주체에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현대차가 장기적인 협력 관계와 데이터 공유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기술이 성숙 단계로 갈수록 하드웨어의 상대적 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협상력 약화 우려도 제기된다.
특정 고객에 대한 의존도 역시 변수다. 현재 현대차의 자율주행 파운드리 전략은 웨이모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우버 등 다른 글로벌 플랫폼 기업과의 협력은 잠재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부 고객이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경우, 계약 조건 변화나 전략 수정이 곧바로 실적 변동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운드리 산업 특유의 종속 리스크를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이러한 한계를 인지한 상태에서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차량 자체의 마진이 낮더라도, 전 세계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 택시의 '표준 하드웨어'로 자리 잡을 경우 부품 공급과 유지보수 등 애프터마켓 영역에서 추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현대차는 파운드리를 통해 현금을 창출하는 동안 자회사 포티투닷과 모셔널을 중심으로 자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경쟁력을 완성하겠다는 투트랙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에 현대차가 '바퀴 달린 플랫폼의 제조사'가 될지, 아니면 생태계의 핵심 설계자로 도약할지는 파운드리 이후의 행보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이 교수는 "완전 자율주행은 기술 발전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제도와 소비자 수용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부분 자율주행을 도입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장기적으로는 독자 기술을 축적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