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타도 압잡이, 덩이 만든 증시 최대 수혜자로
[뉴스핌=강소영 기자]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10주년 추모 열기로 뜨거운 요즘, 과거 사인방을 옹호하며 주자파(자본주의 추종세력) 핍박에 앞장섰던 골수 문혁파가 주식 재벌로 변신해 화제다. 덩샤오핑과 '시장경제' 타도를 외치며 사인방(四人幇)의 '나팔수' 노릇을 하던 사람이 문혁 이후 10여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자본주의 꽃인 증시를 기반으로 문혁시절 인민의 공적이었던 '부자'로 변신했으니 중국인들에게 이보다 더한 역사의 아이러니도 없을 듯 싶다.
신흥 주식부호로 변신한 주인공은 바로 장테성(張鐵生). 그간 공개적인 행보를 자제하며 언론의 노출을 꺼려왔던 그는 8월 8일 흰색 중국 전통의상을 입고, 가슴에 붉은 꽃을 단 화려한 복장으로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나타나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날 장테성은 명예 감사장의 신분으로 허펑목업(禾豊牧業)의 상장을 축하하기 위해 상하이 거래소를 찾았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 장테성은 이미 주식 벼락부자로 중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지난 2012년부터 상장을 준비한 허펑목업이 7월 말 상장에 성공한 후 주가가 파죽지세로 치솟았고, 창립자이자 6대 주주인 장테성은 4억 위안(약 662억 원)의 벼락부자가 됐기때문이다.
장테성의 성공 스토리가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생 반전의 특이한 역정 때문이다. 이른바 '백지 답안의 영웅'으로 유명한 장테성의 이야기는 최근 덩샤오핑 추모 드라마인 '역사 변곡점 위의 덩샤오핑(歷史轉折中的鄧小平)'을 통해 다시 회자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때는 문혁 직후인 1977년 7월 21일. 덩샤오핑은 대입입학 시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식인 양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때 문화혁명을 지지하고 사인방의 지식인 타도를 옹호한 장테성 백지 답안 사건이 다시 거론된 것.
4년 전인 1973년 문화대혁명 기간 치러진 전국 대학입학 시험에서 장테성은 백지답안을 제출하고, 답안지 시험지 뒷면에 문화혁명의 노동을 칭송하고 지식추구를 이기적인 행태로 치부하는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이 사건은 곧바로 각종 기관지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장테성은 장칭(姜靑, 강청) 등 사인방으로부터 인민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사인방을 등에 업고 대학입학은 물론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으로 선발되며 승승장구하던 장테성은 훗날 사인방이 몰락하면서 고난의 인생길로 접어들게 된다.
1983년 장테성은 선동죄와 정권 전복 음모죄 등으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중국 대중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졌다.
1991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한 장테성은 3명의 동업자와 함께 사료회사를 설립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일으킨 장테성과 동업자는 1995년 6월 회사명을 허펑목업유한공사로 변경, 기업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허펑목업은 17개 자회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내실과 규모를 모두 겸비한 허펑목업은 2012년 기업공개(IPO)에 착수한다. 장테성은 3200만 주의 지분을 보유한 6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고, 2014년 7월 30일 상장에 성공했다. 발행가가 주당 5.88위안이었던 허펑목업의 주가는 14일 주당 12.41위안까지 올랐다. 상장당일 개장가 7.06위안과 비교하면, 허펑목업의 주가는 5일 동안 76%가까이 오른 셈이다.
허펑목업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재계와 증시의 이목은 장테성에게 집중됐다. 중국 현대사의 암울했던 문혁시대의 '영웅'으로서,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으로부터 반동인물로 낙인찍힌 역사의 '실패자'가 성공한 기업가로 변신, 벼락부자가 된 사연이 매우 극적이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허펑목업의 주가가 20위안까지 오르면 장테성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주가가 11.87위안을 넘어서면서 허펑목업은 장테성을 포함한 8명의 백만장자를 배출했다.
[뉴스핌 Newspim] 강소영 기자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