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1~5세대 등장...책임은 누구에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정부와 보험사는 무엇을 했나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1세대와 2세대 일부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보장이 축소된 실손보험으로 갈아타지 않을 것이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가 지난 9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5세대 실손보험 발표와 함께 개최한 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강한 반발을 예고했다.
5세대 실손보험의 핵심은 자기부담금을 대폭 상향하고 '보장 한도'를 크게 축소한 것이다. 동시에 금융당국은 1세대와 2세대 가입자들의 '갈아타기'를 유도하고, 이동 효과가 미비할 경우 법 개정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경고했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금융증권부 이윤애 기자 2022.07.12 yunyun@newspim.com |
이후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보험을 둘러싸고 정부와 소비자 간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보험은 자기 부담률이 0~20%로 낮고, 비급여 항목을 모두 보장하며 약관 변경이 없어 계약이 만기까지 유지된다. 금융당국은 자기부담금 비율이 없거나 매우 적어 과잉 치료와 허위 치료가 발생해 실손보험 손해율이 치솟았다고 지적한다. 이대로는 실손보험의 지속 가능성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1세대(654만명)와 초기 2세대(928만명) 등 약 1582만명으로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3578만명)의 약 44%에 해당하는 이들이 현 보험을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어떤 개혁도 적용 대상이 절반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일부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를 따르다 보면 현 상황이 '엉덩이가 무겁고 과잉 치료를 하는'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책임인 것처럼 오해하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책임 회피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최근 성인 남녀 1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천차만별 비급여 가격 차이에 문제가 있다'는 응답자가 89%, '비급여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84%에 달했다. 경실련은 병원급 도수치료 가격 격차가 최대 62.5배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도수치료는 실손보험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항목이다. 정부는 도수치료 등 건강보험의 비급여 확대를 방치하며 실손보험 의존을 키웠고, 이는 필연적으로 실손보험 손해율 증가로 이어졌다.
보험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제의 근본은 상품 설계에 있다. 보험사들이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보험을 판매할 당시의 광고를 보면, "모든 것을 보장한다", "병으로 입원하면 첫날부터 매일 0원 지급" 등 경쟁적으로 가입을 유도했다. 또한 "더 늦으면 보장 한도가 크게 축소된다"며 가입을 재촉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병원에 갈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실손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손해율이 급증하자 보험사들은 문제를 소비자와 의료계로 돌리고, 거듭된 보험료 인상을 통해 손해를 떠넘겼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가입자의 상위 9%가 전체 실손보험금의 약 80%를 지급받고 있다"며 이들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이번 실손보험 개편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상위 9%에 대한 적절한 규제에 실패한 정부는 하위 91%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안상호 대표의 발언이 다시 떠오른다. 이번에는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면"이라는 부분이다. 취재 중 만난 보험업계 관계자는 "어차피 갱신을 지속하면 어느 순간 높아진 보험료를 견디지 못해 초기 가입자들이 자발적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지금도 소득이 줄어드는 60대가 되면 대다수가 보험료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강하게 나설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보험료 인상률 제한을 풀면 자발적인 전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정부와 보험사의 책임 회피 속에서 소비자만이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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