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 국운이 다한 것 같다. 이러다 정말 나라 망하는 것 아니야?
요즘 우스갯소리로 많이 듣는 말이다. 대체로 식사 자리에서 저런 말이 나오면 '하하 정말 그런 것 같다'며 웃고 넘긴다. 하지만 그 안엔 진심과 우려가 1g(그램) 정도는 담겨있다.
나라가 심리적 내전을 넘어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중인 것 같다. 국회에 출동한 계엄군과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이들이 깨부순 건 유리창만은 아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공동체와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됐고 다시 회복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 실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혜진 정치부 기자 |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을 투입한 게 통치 행위라고 주장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겠다. 극우화하는 국민의힘도. 민주주의의 궤도를 이탈했다고, 이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대안이 되고 있나. 보수가 과표집 됐다곤 하지만 여론조사 흐름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민주당은 "저쪽이 탄핵에 반대하고 특검에 반대하는데 어쩌겠나"라고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정치권에 '돌격'이라는 전술밖에 없는 것 같다. 민주당 내에서도 "계엄 직후만 해도 국민의힘이 이 정도로 똘똘 뭉치진 않았다. 잘 회유했더라면 국민의힘 다수가 극우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의 강경 일변도를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심을 잘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게 좋은 정치 아닌가. 지금은 적과 적만이 남은 형국이다.
대통령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질(quality)'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최고 정치 행위자다. (이철희,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설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회복과 성장을 화두로 던졌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면서.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통합하겠다고 했지만. 그가 내내 강조했던 기본사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는 무엇일까, 왜 정치를 할까, 무엇을 위해서 대통령이 되려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기본사회를 두고도 가치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의 민주당에게 '그동안의 민주당이 강조해 온 진보적 가치는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은 한가하기만 한 소리인 것 같다. 밥은 먹고 살아야겠지만 밥만 먹고 살 수 없는 게 인간인데. 정의당 3인을 민주당으로 영입하면 진보인가.
신년에 요가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새해에 소망하는 씨앗을 마음에 심어라'고 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은 각각 '평화'와 '공동체'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 소망만을 떠올렸던 나는 뜨끔했다.
정치권이 상상하는 것보다 국민들은 더 큰 가치를 희망하고 있다. 가치를 현실화하는 데 정치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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