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거가 가르쳐준 플로트란
독특한 버크셔 구조
60년간 연평균 20%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다시는 그와 같은 인물을 보지 못하리라."
햄릿이 연극 초반에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한 말이다. 월가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워렌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2025년 말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가 이룬 성공에 필적할 인물이 또 나타날까.
주요 외신에 따르면 행동주의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이 퍼싱 스퀘어를 통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공 신화를 다시 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펀드스미스의 테리 스미스 최고경영자(CEO)는 회의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을 통해 두 번째 버핏은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
◆ 버핏의 성공 비결은 = 1965년 6월 뉴잉글랜드의 섬유회사 버크셔를 인수한 뒤 60년간 수장으로 활약하면서 버핏은 연평균 20%에 달하는 주가 상승 신화를 이뤄냈다. S&P500 지수의 수익률을 두 배 웃도는 성적이다.
버핏이 자신의 '위대한' 주식을 선별해 싼 값에 사들이는 전략으로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창출했지만 그의 성공에는 이 같은 능력 이외에 2023년 작고한 그의 '오른팔' 찰리 멍거가 크게 한 몫 했다.
![]() |
워런 버핏 [사진=블룸버그] |
가치주를 발굴해 투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 내는 투자자로 변모시킨 것. 아울러 버핏에게 플로트(float)의 활용법을 깨우치게 했다.
플로트란 간단히 말해 '일시적으로 갖게 된 다른 사람의 돈'을 의미한다. 당장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기 때문에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돈인 셈이다.
![]() |
찰리 멍거 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버핏은 두 가지 사업을 통해 플로트를 처음 접했다. 한 가지는 여행자 수표 시절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였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가 보편화되기 전 여행자들은 해외 여행을 떠나기 전에 여행자 수표를 구매했다. 여행지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으면서 안전하기 때문.
여행자들은 여행자 수표를 사용하기 전에 미리 돈을 지불했고, 보통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이 구매했다. 이들이 여행자 수표를 사용하는 데는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렸고 일부는 아예 사용하지 않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현금 플로트를 갖게 된 셈이었다.
두 번 째는 트레이딩 스탬프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일반화됐던 트레이딩 스탬프는 쇼핑객들이 구매액의 일정 비율로 제공됐다. 소비자들은 쇼핑하라 때마다 스탬프를 받아 책에 붙여 가득 채우면 소형 가전 제품과 교환할 수 있었다. 당시 토스터가 인기 항목이었다.
슈퍼마켓은 스탬프를 발행하기 전에 미리 구매해야 하기 대문에 발행자 쪽에 플로트가 발생했다. 버핏은 멍거 덕분에 버크셔가 소유한 블루칩 스탬프를 통해 이 같은 반사이익을 경험했다.
버핏의 주식 투자 성과는 레버리지를 활용하면서 증폭됐다. 평균적으로 그는 버크셔의 포트폴리오에 약 1.6 대 1의 레버리지를 적용했다. 레버리지는 다양한 형태로 취할 수 있다. 돈을 빌릴 수도 있고, 헤지펀드처럼 일부 주식을 공매도해 레버리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플로트 역시 미리 확보한 현금을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잠재적 레버리지로 작용했다.
![]() |
맨해튼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타워 [사진=블룸버그] |
버크셔에 레버리지를 일으킨 또 다른 플로트는 보험이었다. 가이코(Geico)를 시작으로 버크셔는 다수의 보험 사업을 소유했다. 매년 최소한 동일한 양의 보험을 인수하는 한 시작 시점에 받은 보험료를 투자할 수 있었고, 인수 손실이 억제된다면 조달 비용 없는 '무료' 자금의 원천이 됐다.
이 같은 이점과 함께 버핏이 가졌던 결정적인 성공 비결은 버크셔의 구조였다. 자신이 소유, 통제하는 폐쇄형 회사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펀드는 개방형이고, 이 때문에 시장 기회 측면에서 최악의 시기에 자금이 유입되고 빠져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투자 신탁과 같은 다른 폐쇄형 투자 수단도 있지만 해당 매니저들은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 최고의 액티브 매니저도 운용 성적이 나쁜 기간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순자산가치 대비 할인 거래되고, 주식 환매 또는 펀드 청산이나 심지어 매니저 교체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버크셔 역시 성과가 부진한 기간이 없지 않았지만 버핏이 지배 지분을 보유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지 않고 자신의 전략을 고집할 수 있었다.
◆ 누구도 버핏처럼 될 수 없는 이유 = 펀드스미스의 테리 스미스 최고경영자(CEO)는 누구도 버핏의 운용 성적을 복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도 그가 60년간 누렸던 이점을 복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저평가된 종목의 발굴 능력과 멍거라는 든든한 우군 이외에도 규제 측면에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 개인이 보험회사를 통제하며 보험료를 주식에 투자하도록 허용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는 설명이다.
전세계가 버크셔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상황도 두 번째 버핏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펀드와 펀드에 유입되는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운용 형태와 상관 없이 상장지수펀드(ETF)로 몰리는 실정이다.
이들은 장중 자금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버핏의 투자 수단과는 정반대에 해당한다. 장기 전략이 얼마나 잘 정립돼 있든 수 년간 성과 부진을 견뎌낼 상품은 거의 없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