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산업부장 =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자본시장이었다. 로봇 제조업체와 자동화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했다. 기업들이 인건비 상승과 노사 분쟁이라는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로봇 도입을 서두를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된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당시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근로의 질을 높이겠다는 입법 취지가, 역설적으로 로봇의 인력 대체를 가속화시키고 결국 고용의 양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만약 상황이 이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노동자를 보호하려던 법이 되레 일자리를 잠식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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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돌아보면, 노동 관련 제도 변화가 의도치 않게 기술 혁신을 촉진한 사례도 적지는 않다. 19세기 말 유럽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입법이 시행되자 기업들이 기계화에 속도를 냈고,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노동운동 확산과 임금 급등이 대규모 자동화 설비 도입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자영업자들이 빠르게 키오스크와 테이블 오더를 도입했다는 시각이 있다. 이제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사람'을 찾기가 실제로 어려워졌다. 최근 무인 매장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추세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시작된 무인화 흐름은 편의점, 카페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자의 권리 확대라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재계 안팎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은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국GM의 철수설'도 설득력을 더 높이고 있다. 만약 해외 기업들이 실제로 철수한다면, 국내 일자리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업들 입장에선 자동화, 로봇 투입 속도를 높이는 것도 실질적인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게 가장 큰 목표겠지만, 노사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기업들에겐 효율적인 전략이다. 이런 논리는 이미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기업들이 노사 관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자동화, 로봇 투입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면 고용의 양을 대폭 줄일 것이다.
사실 이미 현장 곳곳에는 로봇이 자리 잡고 있고,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주로 위험한 곳, 아주 단순한 업무 등이 대체되고 있지만 그 영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언제' 실질적으로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를 '진짜' 사람처럼 고도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로봇의 비용을 얼마까지 낮춰야 손익분기에 도달하느냐 등의 논의다.
기업 시각에서 인력을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은 상당히 효율적이다. 임금 협상도, 파업도 없다. '24시간 연중무휴' 노동이 가능하고, 위험한 공정을 대신 맡아 산업재해를 줄인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법적 리스크에서도 자유로워진다. 농담 섞인 얘기겠지만,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혹시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은 로봇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빅픽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라고.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