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로슈 M&A에 국내 기업 주가 들썩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글로벌 빅파마들이 비만과 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임상 단계에 있는 바이오텍을 잇따라 인수하고 있다. 급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차세대 후보물질을 조기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국내 개발 기업들의 파이프라인 가치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화이자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비만 치료제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멧세라'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인수 규모는 최대 73억 달러(약 10조 원)로, 화이자는 멧세라를 주당 47.50달러에 현금 인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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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
멧세라는 2022년에 설립된 미국 뉴욕 기반의 임상 단계 바이오텍으로, 비만과 대사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해왔다. 주요 파이프라인으로는 월 1회 투여를 목표로 한 장기 작용형 GLP-1 수용체 작용제 'MET-097i'와 경구용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MET-224' 및 'MET-097' 등이 있다. 월 1회 투여를 목표로 한 아밀린 유사체 후보물질 'MET-233i'도 보유하고 있다.
화이자는 경구용 GLP-1 계열 약물 다누글리프론을 개발하다가 임상 중간 단계에서 안전성 우려가 제기돼 중단한 바 있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급증하는 가운데, 자체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신규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선점하고자 멧세라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멧세라는 월 1회 투여 가능성을 목표로 한 장기 작용 주사제 후보뿐 아니라 병용 요법과 경구 제형 등의 후보물질을 갖추고 있어, 주 1회 투여 제형 중심의 경쟁사 대비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멧세라는 국내 바이오텍 디앤디파마텍의 경구용 펩타이드 플랫폼 기술인 '오랄링크(Oral Link)'를 활용해 경구 제형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있어, 이번 화이자의 인수로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디앤디파마텍의 파이프라인 가치 또한 재평가되는 모습이다.
화이자의 멧세라 인수 소식 이후 디앤디파마텍의 주가는 지난 22일 기준 전일 대비 29.90% 상승한 21만 5,500원을 기록했다. 디앤디파마텍이 멧세라의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기술이전 파트너사라는 점이 재조명되면서 주가가 급등한 것이다.
멧세라는 2023년과 2024년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디앤디파마텍의 경구용 펩타이드 품목 6개를 도입했다. 디앤디파마텍의 오랄링크 플랫폼은 주사제로만 투여되던 펩타이드 약물을 경구 제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로, 멧세라의 경구 치료제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다만, 화이자가 멧세라 인수 조건으로 제시한 조건부 가치권(CVR)에 디앤디파마텍이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은 포함되지 않아 당장의 가치 평가에서는 제외됐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멧세라의 경구제 후보물질 대부분에 디앤디파마텍의 기술이 적용돼 있어, 향후 개발 진전에 따라 가치는 재평가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화이자는 ▲MET-097i+MET-233i 병용요법 3상 시험 개시 시 주당 5달러 ▲월 1회 투여 MET-097i 단독요법 FDA 승인 시 주당 7달러 ▲MET-097i+MET-233i 병용요법 FDA 승인 시 주당 10.5달러가 추가 지급되는 구조를 내걸었다.
김선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화이자도 기존 비만 치료제를 대부분 경구 제형으로 개발해 왔기 때문에, 멧세라가 현재 개발 중인 경구제에도 당연히 큰 관심을 갖고 개발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대사질환 치료제 시장 공략을 위한 빅파마들의 바이오텍 인수 전략도 주목된다. 로슈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바이오텍 89바이오를 35억 달러(약 4조 88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89바이오는 간질환과 심장대사질환 등을 타깃으로 하는 바이오텍으로, 핵심 파이프라인은 대사성 지방간염(MASH) 치료제 후보물질 '페고자퍼민'이다.
페고자퍼민은 glycoPEGylation 기술을 적용한 FGF21 유사체로, 반감기를 연장하고 안정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89바이오는 임상 2상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등 규제당국과 협의를 거쳐 글로벌 3상 개발 전략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슈의 89바이오 인수는 간·대사질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페고자퍼민이 이미 글로벌 3상 단계에 진입해 있는 만큼 초기 단계 자산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글로벌 빅파마들의 움직임에 국내 개발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로슈의 89바이오 인수 소식이 전해지자, MASH 치료제 개발 기업으로서 간접 수혜 기대감이 부각되며 주가가 급등했다. 실제로 지난 19일 한미약품 주가는 전일 대비 약 10.83% 상승하며 36만 8500원까지 치솟았다.
한미약품은 MASH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 중 가장 앞선 임상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자체 개발 중인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는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 2b상을 진행 중이다. 이 약물은 글루카곤(Glucagon), GLP-1(Glucagon-like peptide-1), GIP(Gastric inhibitory peptide) 등 세 가지 수용체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삼중작용 혁신 신약으로, MASH 환자의 지방간·간 염증·간 섬유화 등 복합 증상 치료를 목표로 한다.
또 한미약품이 2020년 MSD에 기술이전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는 이르면 연내 글로벌 임상 2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MSD는 올 초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긍정적인 임상 데이터를 공개한 바 있어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MSD에 기술이전한 후보물질은 올해 임상 2상 완료 이후 내년 초 임상 3상 진입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라며 "임상 3상에 진입해 상업화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한미약품의 R&D 가치 상승에 따른 기업 가치 재평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s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