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이야기를 통해 인간 심리와 내면 갈등 담는다
내달 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
연극 '얼굴도둑' [사진=국립극단] |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는, 특히 엄마는 모성애가 본능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10개월간 뱃속에서 품어왔던 아이, 사랑할 수밖에 없고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애정이 비뚤어져 있다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연극 '얼굴도둑'(연출 박정희, 작가 임빛나)은 국립극단의 올해 첫 번째 창작 신작으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심리와 내면의 갈등을 다루는 작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묵인되었던 폭력을 '얼굴'이라는 소재를 통해 담아낸다.
공연은 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로스쿨을 수석졸업하고 로펌에 다니던 변호사 유한민이 처참하게 죽는다. 이 때문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딸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엄마의 친구이자 점쟁이는 "잊을 수 있다면 잊는 것이 좋다"고 종용하며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연극 '얼굴도둑' [사진=국립극단] |
모범생이었던 한민의 문제는 안면인식장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엄마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뺨을 때리게 된다.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남자친구도 아닌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여자다. 엄마의 엄격한 보살핌이 오히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서적인 폭력으로 다가오는 상황, 한민은 그렇게 병들어갔다.
한민의 남자친구의 의뢰로 사건을 재수사하는 형사, 한민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찾아온 직장동료, 의문의 엘리베이터 속 여자까지. 생전 한민의 주위에 있었던 인물들을 사건의 실마리는 풀려가고, 결국 모든 원인은 엄마와의 갈등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이 과정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풀려가는 매듭은 관객들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다.
작품은 극단적이지만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정의 모습을 담는다. 자식만 보고 살아온 엄마, 맹목적인 엄마의 꿈에 따라 살아온 딸, 기대감과 부담감 짓눌리는 결말까지. 물론 엄마에게도 이유는 있지만, 그것이 자식을 희생시키고 비극을 불러온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기만 했지 정작 내면의 고통은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연극 '얼굴도둑' [사진=국립극단] |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서로 보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사랑하기에 행해지는 배려 없는 행동들은 폭력이 되고, 이러한 모습은 가족을 벗어나 연인, 친구에게도 종종 볼 수 있다. 때문에 극을 보는 관객들은 누구나 깊은 공감을 하게 되고, 또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배우들의 열연은 높은 몰입도를 자아낸다. 딸 유한민 역의 이지혜와 엄마 역의 성여진은 실제 모녀처럼 깊은 사랑과 묵은 갈등으로 인한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점쟁이여자 역의 주인영, 형사 역의 신안진, 남자친구 역의 신호철, 엘리베이터 여자 역의 황선화, 직장동료 역의 우정원 등은 극의 소소한 웃음을 담당하면서도 긴장감을 높이는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며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린 딸을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을 담은 연극 '얼굴도둑'은 내달 3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