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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비트코인① 한국 화폐 붕괴의 역사

기사입력 : 2023년09월11일 17:03

최종수정 : 2023년09월11일 17:03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 제2차 긴급 통화조치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조치
한반도 통일되면 원화 가치는 대 폭락? 왜?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 영화에서는 가끔 개인 금고에 5만원권 화폐를 가득 넣어 보관하는 장면이 나온다. 재테크 측면에서 보면 이런 보관 방식은 당연히 최악이다. 합법화할 수 없는 검은 돈이나 탈세 목적이 아니라면 은행에 입금해 3%의 이자라도 받는 게 정상적인 화폐의 보관 방법이다.

그런데 화폐는 과연 영원한 걸까?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쓴다. 일본은 엔화, 유럽은 유로화, 중국은 위안화를 쓴다. 한국은 당연히 원화를 쓴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영원한 화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한국 화폐의 붕괴 역사를 살펴보자.

◆ 6.25 전쟁과 제1차 긴급 통화조치

한국은 절묘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받는 일이 흔했다. 너무 먼 과거로의 역사여행은 자제하고 가까이에 있는 1900년도부터의 역사를 살펴보자. 1900년도 초반까지 조선에서는 상평통보가 화폐로 통용됐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조선왕조)이 망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35년간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통치했다. 이 시기에는 일본제일은행에서 발행된 '엔'과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 엔'이 화폐로 통용됐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문제는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지던 1945년 8월의 패망 직전에 도쿄에서 황급히 돈을 엄청나게 찍어내 한국으로 공수해 온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발행된 화폐로 인해 한국의 총 화폐 유통량은 1개월만에 기존의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화폐의 유통량이 2배로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렇게 급조해 발행된 화폐들은 일본인들의 본국 귀향 자금으로 활용됐다. 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과 한국에 있던 일본인 단체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살포됐다.

그 결과 한국 내의 물가폭등으로 이어져 몇 달 사이에 생활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 당시의 물가폭등으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서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때 만약 화폐 대신 금을 가지고 있었다면 화폐가치 하락의 상당 부분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광복 이후 한국경제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는 조선은행권이 '원(圓)'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통용됐다.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5년이 지난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됐다.

개전 3일만에 서울에 진입한 북한군은 한국은행 본점을 점령한 뒤 지하금고에서 미 발행 조선은행권 '원(圓)'을 대량으로 발견한다. 북한군은 남한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이 화폐들을 불법으로 마구 발행해 버린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다시 한번 급락했다.

그래서 이 당시 조선은행권을 가지고 있던 평범한 국민들은 본인들이 보유한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걸 다시 한번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물론 전쟁 중에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쟁 상황에서 위조지폐까지 유통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군인 북한군이 불법으로 제조한 화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는 1950년 8월 28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조선은행권 교환 및 유통에 관한 건"을 공포했다. 이는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 발행한 '한국은행권'과 1대1로 교환하도록 하고 조선은행권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제1차 긴급통화조치'였다.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새로운 '한국은행권'으로 교환하려면 필수적으로 신분확인이 필요하니 불법으로 조선은행권을 손에 넣은 북한군은 한국은행권으로의 교환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보통 화폐 개혁을 할 때는 디노미네이션(화폐 단위 절하)를 같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1차 화폐 개혁때는 1대1의 비율로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 전쟁으로 폐허 된 한국의 제2차 긴급 통화 조치

이후 3년간의 기나긴 전쟁으로 경제는 폐허가 됐다. 한국정부는 막대한 군사비 조달과 파괴된 생산시설 복구비용으로 통화를 대량 남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폭락했고 심각한 물가상승 압력에 시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53년 2월 15일에 '제2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하고 기존의 대한민국 화폐였던 '원(圓)'을 '환(圜)'으로 변경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앞의 '제1차 긴급통화조치'와 달랐던 부분은 교환비율이 1대1이 아니라 화폐 액면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춘 '화폐 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였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폐단위를 '100원(圓)'에서 '1환(圜)'으로 변경해 화폐명칭도 바뀌었고 화폐 교환비율도 100대1이 됐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특정국가의 화폐가 어려움에 처하면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가 진행됐다. 6.25 전쟁 시절의 한국뿐 아니라 1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까지 예외 없이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다. 도대체 왜 '화폐단위 절하(디노미네이션)'를 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은행예금을 동결해 정부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국정부는 '화폐개혁'과 동시에 은행예금도 일정 금액을 강제로 동결시켰다. 기존예금은 10만환(圜) 이상, 긴급통화조치로 예입된 구권예금은 3만환(圜) 이상을 대상으로 20~100%의 체증율을 곱해 특별 정기예금과 국채예금으로 전환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통화증가 요인이었던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을 진행했다. 결국 통화량 급증을 억제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밖에도 큰 폭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 표기의 숫자가 커짐에 따라 발생하는 경제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폐단위를 절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요금이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000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됐다고 가정해 보자. 옛날처럼 현금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면 100만원의 지하철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지불하는 건 매우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산과 지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하거나 아예 '화폐 단위 절하'를 단행하는 경우도 많다.

◆ 박정희 의장(대통령)의 제3차 긴급 통화 조치

우리가 만약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을 뒤진 결과 한국 화폐 다발이 무더기로 나왔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 화폐의 발행일이 만약 1960년이라면 그 화폐는 지금 시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은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금 사용되고 있는 '원(WON)' 화폐는 1962년 6월 10일부터 도입된 화폐다. 그래서 그 이전에 발행된 화폐는 한국은행에서 교환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런 화폐라면 화폐 수집상에게 팔아버리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니까 말이다.

한국 국민들이 정부에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건 해방상황도 아니고 전쟁상황도 아니었다. 긴급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정부의 긴급조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기의 난데없는 '화폐개혁'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1961년 5월 16일에 박정희 의장(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부가 집권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산, 투자, 소비 등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예금 이탈이 진행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62년. 침체된 경제활동 때문에 안정적인 정권 유지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인플레이션)이 계속 심각해지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6월 9일 밤 10시에 '제3차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했다. 박 의장은 부정축재와 음성적으로 축적된 자금의 투기화를 막고, 악성 인플레를 방지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게 바로 1962년 6월 10일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다.

 화폐 개혁의 핵심은 '환(圜)'에서 '원'으로 단위를 바꾸고, 10대 1의 비율로 절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구당 교환할 수 있는 돈이 최대 5,000환(圜)에 불과했다. 원화로는 500원이다.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의무적으로 저금한 뒤 6개월에서 1년 후에 찾을 수 있었다. 또는 산업개발공사의 주식(연 15% 배당 보장)으로 바꿔야 했다.

그런데 구권을 신권으로 바꿀 수 있는 시간은 발표 이후 고작 7일에 불과했다. 전 국민이 7일안에 이 모든 걸 처리하는 게 과연 가능하긴 한 걸까? 개인의 사유재산을 상당히 침해하는 억압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 당시는 전쟁상황이 아니라 평시 상황이었다.

이 발표로 경제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어났다. 바로 월요일 새벽부터 은행에는 화폐를 교환하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고, 일선 상점에서는 '구 화폐'를 받지 않거나 물건가격을 크게 올렸다. 아예 문을 닫은 상점도 많았다. 한국경제는 더욱 더 침체됐다.

그런데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왜 기습적으로 '화폐개혁'을 진행하며 무리수를 둔 걸까? 화폐개혁을 하면 부정하게 재산을 모은 사람들과 중국 화교들이 엄청난 규모로 숨겨둔 돈을 '신 화폐'로 바꾸려 할 것이고 이 때 강제로 예금으로 묶어서 국가의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고 산업자금으로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1962년의 통화개혁은 한국은행 총재 등 관계 당국자와의 사전협의도 없이 극비리에 진행됐다. 신은행권은 정부가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사에 비밀리에 발주해 제조했고 6월 9일 중앙정보부와 군의 도움을 받아 한국은행 본지점으로 현송됐다.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공무원들은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진행된 '통화개혁'의 기존 '환(圜)화' 회수내역을 보면, 100만 환(신화 10만 원) 이하의 소액이 90.5%를 차지했고 1억 환(신화 1천만 원)을 초과하는 예입은 총7건으로 12억 환에 불과해 당초 정부의 예상과 달리 여유자금의 현금 보관규모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부정축재를 통해 숨겨진 돈의 규모는 많지 않았던 셈이다.

또 중국 화교들의 경우 이미 중국 정부에게 몇 번의 뒤통수를 맞은 경험들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금을 선호해 왔다. 이런 이유로 중국 화교들은 돈이 생길 때마다 화폐 대신 '금'으로 바꿔서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정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화폐개혁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화폐개혁으로 인한 경제 현장의 극심한 대혼란과 미국의 우려까지 전달돼 군사정권의 예금봉쇄 정책은 지속되지 못했다. 결국 1개월 뒤인 7월 13일에 봉쇄예금 동결을 해제했다. 이로써 기습적인 통화개혁은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 인플레이션 방지 등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부작용만 남긴 채 초라하게 끝났다.

1962년의 화폐개혁 이후에 한국 국민들은 현금자산이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15% 이자율(현재 시점에선 고금리지만 그 당시는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다)의 은행예금을 기피하고 토지와 주택 구입 등 실물자산 투자로 돌아섰다. 한국 국민들의 부동산 사랑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화폐는 안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국가의 필요나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화폐개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종잇장처럼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7일안에 화폐를 신권으로 바꾸지 않으면 휴지가 돼 버리는 정책은 공포스럽다.

물론 정부가 화폐를 강제로 뺏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통 화폐개혁을 할 때는 '구 화폐'를 '신 화폐'로만 바꿔주는 단순한 방식이 아니다. 1명이 교환할 수 있는 돈에 상한선을 두고 그 이상의 돈은 은행에 강제적으로 예금시켜 버린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개인 재산권 행사에 굉장한 침해를 받게 된다.

1962년의 화폐개혁으로 변경된 화폐 '원'이 지금 현재까지도 쓰이고 있는 바로 그 '원화'다. 화폐개혁 이전인 예전의 원[圓]과 구별하기 위해 지금의 '원'은 한글로만 표기하고 영문 표기는 'WON'이다. 한국 화폐 '원(WON)'의 역사는 고작 60년에 불과하다.

◆ 한반도가 평화통일 될 경우 한국 화폐 '원'의 가치는?

이제 오래 전 우리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평화통일 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미래에 북한과 남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글로벌시장에서 유명한 투자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짐 로저스'는 2013년에 국제시장에서 북한화폐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짐 로저스'는 왜 북한화폐에 투자했을까?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한국이 충분히 보상해 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짐 로저스의 투자를 이해하려면 동독과 서독의 통일 사례를 살펴보면 된다. 1990년 독일의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은 각자가 발행한 마르크(mark) 화폐를 썼지만 교환비율은 달랐다. 국가재정이 취약했던 동독의 화폐는 암시장에서 서독화폐의 4분의 1에 교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서독 사람들이 희생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통일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 마르크의 교환비율을 1대1로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동독사람들은 엄청난 이득을 봤다. 추가로 발 빠르게 암시장에서 동독 화폐를 대거 매입했던 서독 투자자들도 4배의 이익을 얻게 됐다. '짐 로저스'가 노리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화폐의 상황은 어떨까? 북한은 2009년에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전격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화폐개혁 이후인 2023년 현재 기준으로 '북한 원'의 환율은 1달러당 약 8,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원∙달러 환율 1,300원과 비교하면 화폐가치가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짐 로저스'는 혹시 평화통일이 되면 한국이 독일처럼 화폐 교환비율을 1대1이나 1대2로 너그럽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굳이 가능성을 따져보면 한반도의 평화통일보다 북한이 한 번 더 화폐 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북한의 경제상황이 여전히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시 한번 화폐개혁을 진행하면 구권을 가지고 있는 '짐 로저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짐 로저스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그가 과연 '북한 화폐'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먼 미래에 남북 통일이 됐을 때 한국 정부가 과거 독일처럼 북한과의 화폐 교환비율을 너그럽게 가져가는 결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원화를 보유한 한국 국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일부자산은 원화보다 달러로 보유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미래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뿐 아니라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던 독일, 최근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까지 전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화폐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긴 하지만 그 역시 신용화폐이자 종이화폐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화폐붕괴의 보험성격인 '금'이나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다.

 

②편에서 계속… 비트코인② 독일 화폐 붕괴의 역사…나락 간 베네수엘라 화폐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 : 조현아 / 편집 : 문소희)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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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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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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