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미국은 오는 9일(현지시간) 국가별 상호관세 유예 시한 종료를 약 일주일 앞두고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예 연장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수많은 국가들과 일일이 협상할 순 없다며 유예 종료 전 상호관세율을 담은 서한을 각국에 발송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투항이냐, 아니면 고율관세냐' 사이에서 선택하라는 압박 전술이다.
동시에 백악관 고위관리들의 입을 통해서는 그간 협상에 성의를 보인 국가에는 협상 채널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이러한 투트랙 전략은 협상 모범생과 열등생에 대한 대접을 180도 달리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높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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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관세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 |
◆ 무역합의국 영국·중국·베트남에 그쳐...이마저도 '부분적'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상대국별 상호 관세를 발표한 것은 지난 4월 2일이다. 같은 달 9일부터 90일 간 유예해,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는 10%의 기본관세만 부과해 왔다. 이 기간을 각국과 무역협정을 타결하기 위한 협상 시간으로 활용했지만, 실질적 합의를 이룬 국가는 영국, 중국, 베트남뿐이다.
이마저도 자유무역협정(FTA) 수준의 포괄적 협정이 아니라, 조건부 관세 인하나 한시 유예에 가까운 수준이다.
5월 8일 영국과의 합의에서 미국은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를 영국산에는 면제하고, 연간 10만 대 한도에서 영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관세를 10%로 낮췄다. 다만 다른 영국산 수입품에는 10% 기본관세를 유지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영국은 미국산 에탄올·소고기·농산물·기계류에 대한 시장을 개방하고, 특히 에탄올 관세를 전면 철폐하며 사실상 무관세로 맞춰 줬다. 또 1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해, 관세 인하의 조건으로 대규모 구매를 '끼워넣은' 전형적 트럼프식 딜로 평가된다.
5월 14일 미중 양국은 서로 부과하던 100% 넘는 초고율 관세를 대폭 낮추며 90일간 '관세전쟁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도 8월 12일이면 종료되는 한시적 조치다.
이어 지난달 말 체결된 미중 무역합의 역시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통제 해제, 미국의 제트 엔진·LNG·에탄 수출 제한 완화, 중국인 유학생 비자 규제 해제 등을 맞교환한 수준으로, 보복 관세 철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이마저도 지켜질지가 미지수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 희토류 자석이 들어오긴 하지만 4월 4일 이전만큼 수준은 아니다"라며 중국 측에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날 발표된 베트남과의 무역합의는 상대적으로 협정다운 틀을 갖췄다는 평가다. 미국은 모든 베트남산 제품에 20% 관세를, 환적(제3국 경유) 상품에는 40% 관세를 부과키로 했으며, 베트남은 대신 미국산 자동차·농산품에 우선 접근권을 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무관세로 미국산 제품을 팔 수 있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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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입 컨테이너 [사진=블룸버그] |
◆ "관세 최고 50%"...우방국은 피할 수도
유예 종료일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미국은 서한을 통한 상호관세율 통보로 압박 수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상호관세율 상한은 최대 50%에 달할 전망이다. 유예 종료 이후에도 협상은 이어가겠지만, 통보한 관세율은 일단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한국·일본 등 미국과 안보·경제적으로 긴밀한 동맹국에는 일부 품목의 10% 기본관세를 유지하며 추가 협상 기간을 주는, 이른바 '조건부 유예' 카드가 거론된다. 교역 규모가 작은 국가는 즉각 고율관세를 적용하되, 핵심 동맹국에는 조정의 여지를 남겨두는 투트랙 방식이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과 교역량이 작은 국가는 즉각 새 관세율을 수용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고,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안보·경제적으로 밀접한 동맹국에는 협상 시간을 더 줄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을 보도했다.
자유주의 성향의 케이토연구소 클라크 패커드 연구원도 "백악관이 성실하게 협상에 임하는 국가에는 관세 부과를 일부 유예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상호관세 유예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각국은 저마다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막판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0%의 보편 관세를 일정 수준 수용하는 대신, 의약품·주류·반도체·항공기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는 관세 인하나 쿼터·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인 마로슈 셰프초비치는 이를 최종 타결하기 위해 지난 1일 워싱턴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자동차부품·철강·농산물 관세를 둘러싼 입장차로 협상이 교착 상태지만, 인도 대표단이 워싱턴 체류를 연장하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협상 연장을 탐색 중이다. 한국은 이미 한미 FTA로 대미 수입품에 사실상 0% 관세를 적용하고 있어, 방위비 분담이나 환율 등 비관세 분야가 주된 쟁점으로 꼽힌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쌀 시장 개방 요구와 자동차 수출 관세 문제 등을 놓고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각국은 이번 주말까지 막판 담판을 이어갈 예정이지만,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선택지는 한정적이다. '투항하듯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고율관세를 감수하라'는 강경한 기조 아래, 미국발 무역 리스크가 글로벌 경제에 다시 그림자를 드리울 참이다.
wonjc6@newspim.com